퐁투스 키안더(Pontus Kyander), 미술평론가




통상,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은 지면으로 떨어지게 되고, 우거진 관목들 아래 무성히 쌓이게 된다. 새들이 부리를 열고 난후, 그들의 지저귐은 저 멀리 나무들 너머로 사라지며, 구름 속 비는 조용히 흩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소리가 들리고, 소리가 난 후 놀란 새가 부리를 열기 시작하는 곳. 하늘에서부터 내리는 비가 아닌, 구름 속을 찾아 거꾸로 올라가는 비가 내리는 곳, 지면에서 나뭇가지를 향해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곳. 이곳에서는 무질서가 질서를 앞서고, 침묵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이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창조의 순간인 것이다.

태초에 세상에는 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사실, 침묵도 존재하였다. 모든 것을 규정짓고 이론화하는 언어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국 언어가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는 침묵과 무질서가 가득한 세상을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어떠한 메아리도 울리지 않고, 그래서 어떤 결과도 생겨날 수 없었던 세상. 이곳에서 빛과 어둠은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급작스럽게 균열이 되고난 후, 이 세상은 하나의 장소가 되었다. 소리는 침묵에서 해방되었으며, 빛은 어둠에서 벗어났다.

이종목의 회화는 질서가 생기기 전의 상태에서 서서히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 상태는 아직 의미가 정해지지 않은 상징과 언어가 있는 곳이며, 법칙이 정해지지 않았고,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기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잎사귀들이 지면이 아닌, 나뭇가지로 떨어지고, 소리가 그 진원지를 찾아나서는 순간이다.

의미를 찾아가는 기호들, 질서를 찾으려 하는 무질서. 이것이 이종목 회화의 순간이다. 이는 유동성이 있는, 변화할 수 있는 세상이며, 안정과 질서가 생기기 전이다. 그래서 이종목 작품에서는 흥겨움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업은 규칙이 아직 존재하지 않은 곳이며, 모든 것들이 각각의 가능성과 변화 가능한 의미, 역할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이종목이 익혀왔던 전통, 즉 한국화에서 예술을 끌어안는 철학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종목의 붓은 자유로우며, 그의 눈은 감겨있다. 마치 그의 기호들을 느슨히 풀어주고, 의미를 향해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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